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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수영장에서 만난 호인들

슈퍼맨
ㅎㅎㅎ

허구한 날 부정적인 말만 한 것 같아서 좋은 말도 해보려 한다. 
빌런도 많았지만 호인도 많았다. 원래 안 좋은 기억이 더 오래가는 법이라 그렇지만. 

 

1. 뭔가를 알려주는 호인

누군가를 응시해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나를 보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초심자가 두리번거리며 낯설어하는 모습이 보이면 높은 확률로 이목을 끈다. 
수모나 수영복을 반대로, 거꾸로 입었음을 말로 알려준다. 나아가 끈으로 묶는 리본까지 있다면 리본 모양을 바르게 해 준다든지 수영복을 잡아당겨 입는 것을 도와주든지 터치가 들어갈 수도 있다. 
거품이 묻었다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침없이 샤워기로 물을 뿌리는 과감한 사람이 있다. 
샤워가 끝나고 탈의실에서 물기가 안 말랐다고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저하지 않고 당신의 수건으로 닦아주는 사람이 있다. 

 

2. 팁을 전수하는 호인

수영복을 끙끙 입는 것 같아보이면 알려준다. 거품칠을 하면 수영복이 수월하게 들어간다고.(수영복 비누칠은 손상된다 안된다의 찬반 여론이 있어 알아서 선택.)
어느 샤워기기가 물줄기가 시원찮은지, 너무 세서 아픈지, 찬물밖에 안 나오는지, 뜨거운 물밖에 안 나오는지 알 수 있다.(데스크에 말해서 고쳐야 하지 않나 싶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아 그냥 그대로다.) 그런 샤워기에서 씻고 있으면 본인 자리에서 하라고 권해주는 호인들이 많다.

 

3. 어마어마한 호인

실내수영장에서 오리발의 사용을 각 시설마다 규정이 다르다. 
아예 못 쓰는 곳이 있고, 정해진 레인에서만 쓰게 하는 곳이 있고, 정해진 날에만 쓰게 하는 곳 등이 있다. 
이때 호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오리발을 건네주며 해보라고 권한다. 어떤 호인은 본인이 없는 동안 사물함에서 꺼내 쓰라고까지 한다. 좋은 것을 권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어느 날은 얼빵하게도 다 씻고 나서 수영복가방이 없음을 알게 됐다. 수영복 가방 찾아서 어리바리 두 눈 굴리고 있자니 수영복을 빌려주겠다는 호인들이 하나둘 늘어만 간다. 
간혹 성별이 다른 보호자로 인해 혼자 들어온 어린이가 있으면 그 아이의 케어를 대신 해주는 어마어마하게 착한 호인들도 있다. 아이를 샤워시켜 주고 닦아주고 옷 입혀주고 해서 내보내주신다.(그 정도의 케어가 필요한 아이라면 같은 성별의 보호자가 같이 와야 하지 않은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4. 본보기가 되는 어른

이 케이스는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게 존경하는 호인들이다. 
이들은 사실 수영장의 고인물들은 아니고 자라나는 ing 새싹으로 생각한다. 
매일같이 수영장에 출석하셔서 열심히 본인들의 수영을 독학으로 해나가신다. 
어린이 풀에서 팔을 휘적휘적 하시며 자유형을 하셨다. 처음에는 짧은 가로로, 이후에는 긴 가로로, 그리고 대각선으로까지 하시더니 이윽고 필드로 나가서 기초로 나가셔서 25m 자유형을 성공하셨다. 엄지를 척 보이면 쑥스러워하신다ㅎ 
이후에는 한단계 깊은 초급에 가서도 시도를 하셨다. (이때 초급에 있던 누군가가 여기서 하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 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하고 있었고 이분도 25m를 멈추지 않고 하실 수 있는 데다 핀잔 준 본인은 상급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이분은 이후 배영까지도 마스터하여 술술 헤엄쳐 가셨다.  
내가 볼때 강습을 들으면 훨씬 더 잘하실 텐데 연소자들 사이에서 하기 쑥스러우신지 강습을 권하면 고개를 젓으신다. 
나이에 상관없이 본인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고슴도치 딜레마 

어쩌다보니 대화의 물꼬가 트여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몇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슬슬 보이고 그에 따라 가깝거나 먼 거리를 유지한다. 
저렇게 행동해야지와 저렇게 행동하지 말아야지를 반복한다. 
수영장의 연령대가 높은 곳에서 젊은 축에 속하여 뜻하지 않은 관심을 받았던지라 그들의 대화를 어쩌다 보니 많이 들어주게 되었다. 
김밥용 김과 잡곡밥만으로 손수 만든 김밥을 주거나 북적거리는 샤워실에서 다 씻었다며 자리를 넘겨주는 등의 호의를 보여줄 때는 고마움과 당혹감을 반반씩 느낀다. 
이웃 간 마음의 정과 개인주의 사회에서 혼란을 느낀다.